김포평화문화연구소 중국시찰단 동행 취재기[1]
김포평화문화연구소 중국시찰단 동행 취재기[1]
  • 조충민 기자
  • 승인 2019.07.03 1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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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찰 내내 분단으로 인한 안타까움·애잔함·서글픔 느껴
윤동주 시인 생가, 여순감옥 등 방문…2천km 이동 강행군
윤동주 생가 앞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 표기에 모두 경악
두만강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한 마을.
두만강에서 건너다 보이는 북한 마을.

김포평화문화연구소(소장 유영록·전 김포시장) ‘3·1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중국시찰단(이하 시찰단)은 지난 달 28일~7월2일 5일간 △두만강 △윤동주 시인 생가 △백두산 천지 △장백폭포 △광개토대왕릉·비 △압록강 △여순감옥 등을 둘러보았다.

연길공항에 지난 28일 오전 11시(이하 현지 시간) 도착한 뒤 지난 2일 오후 2시30분 대련공항을 통해 귀국하기까지 무려 2000km에 달하는 거리를 전용차량으로 이동하는 강행군을 벌였다.

시찰단 모두가 이번 시찰 내내 느낀 감정은 △우리 민족의 위대성 △분단의 상처로 인한 애잔함, 서글픔, 안타까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존경심 등에 다름 아니었다.

◇1일차-두만강, 윤동주 시인 생가, 가곡 ‘선구자’의 해란강, 일송정

시찰단은 두만강을 보기 위해 연길공항을 출발, 도문시로 1시간 정도를 이동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머리 속에 그려 봤지만 두만강 현지에 도착하니 사정은 그렇지 않았다.

날이 가물어 그런지 강물은 많지 않았고 노 젓는 뱃사공도 없었다. 가장 먼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분단의 아픈 현실뿐이었다. 북한 동포들이 살고 있는 집들이 바로 눈앞에 보이지만 건너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시찰단들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아 보였다.

중국 두만강 공원에 세워진 홍수투쟁승리기념비.
중국 두만강 공원에 세워진 홍수투쟁승리기념비.

한 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난 2016년 두만강 대홍수를 극복한 홍수투쟁승리기념비가 중국 쪽 두만강 공원에 세워져 있는 모습이었다. 사회주의 체제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기념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 속에 그려본 두만강 뱃사공을 뒤로 하며 일제 하 저항시인 윤동주 생가 방문을 위해 다시 차를 타고 용정시까지 1시간 가량을 이동했다.

당초 일정엔 윤동주 시인의 모교인 대성중학교를 방문, 윤동주 시비를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대성중학교 입구 쪽으로 들어섰던 차량이 이내 유턴을 했다.

시찰단은 길을 잘못 들어섰구나 하는 생각을 했으나 현지 가이드가 이내 “아쉽지만 오늘은 대성중학교를 방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오늘 중국 전역의 중학교들이 시험을 보는데 시험에 방해가 될까봐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을 해줬다.

시찰단은 아쉬움을 남긴 채 명동촌 윤동주 생가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윤동주 생가 입구에서 시찰단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윤동주 시인 생가 입구 안내 표지석.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표현이 선명하다.
윤동주 시인 생가 입구 안내 표지석.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는 표현이 선명하다.

안내 표지석에 당연히 ‘대한민국 애국시인’ 윤동주 생가라고 적혀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이라고 쓰여 있었다.

우리나라가 아직 힘이 약해 윤동주 시인의 국적을 바로 잡지 못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 빨리 윤동주 시인의 국적이 대한민국으로 바로 잡히길 기원하며 다음 날 일정(백두산 천지 시찰)을 위해 전용 차량에 몸을 맡겼다.

이도백하시까지 3시간 정도를 달리는 차 안에서 가곡 ‘선구자’의 배경이 됐던 해란강과 일송정을 볼 수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일송정은 원래 정자처럼 생긴 소나무였는데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한다며 일송정을 베어내고 다시는 소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어찌나 많은 양의 제초제를 뿌려댔는지 지금도 그 자리에는 아무 것도 나지 않는다”고 설명을 했다.

가이드가 설명을 할 때 한 가지 특이점은 입에서 ‘일본놈’이라는 표현만 나온다는 사실이다. 가이드 설명 내용 중 ‘일제’라고 쓴 것은 실제 설명을 모두 순화한 것이다. 일제 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후손들이기에 일본에 대한 감정이 어느 누구 보다도 좋지 않으리라는 추측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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