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평화문화연구소 중국시찰단 동행 취재기[3]
김포평화문화연구소 중국시찰단 동행 취재기[3]
  • 조충민 기자
  • 승인 2019.07.31 2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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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차(6월30일)-광개토대왕릉·비, 단동 고려식당
벅찬 기대감과 안타까움이 교차한 하루(본보 7월1일자)
북한 여성들 ‘반갑습니다’ 공연 보며 때늦은 저녁 먹어
서로 어깨 걸고 합창…‘겨레는 하나’ 체험에 가슴 뭉클
압록강 단교 입구.
압록강 단교 입구.

김포평화문화연구소(소장 유영록·전 김포시장) ‘3·1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중국시찰단(이하 시찰단)은 시찰 3일차인 지난 6월30일 집안시 광개토대왕릉·비를 둘러본 뒤 차량으로 6시간 정도를 이동해 단동시 고려식당에 도착했다.

시찰단은 오후 9시쯤 북한이 운영하는 이 곳, 고려식당에서 때늦은 저녁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20여분 쯤 지났을까?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로 시작하는 북한 여성 공연단의 노래가 시작됐다. 이어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이 울려퍼지며 무대와 객석이 하나가 됐다.

무대에서 함께 얼싸안고 ‘두만강’을 부르는 동안 ‘겨레는 하나’임을 몸소 깨닫게 됐고 순간 가슴이 뭉클해지고 있음을 온 몸이 느끼고 있었다.

◇4일차(7월1일)-단동 호산장성, 압록강 단교, 수풍댐

호산장성 보며 중국 당국 동북공정의 부당함 느껴/한국전쟁 당시 끊어진 압록강 다리 관광명소 변신/압록강 유람선 타고 목전에서 북한 주민과 손 흔들며 인사

호산장성 전경.
호산장성 전경.

시찰단은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뒤 호산장성을 찾았다. 이 곳을 방문한 까닭은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단을 보기 위해서다. 당초 호산장성은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고구려 박작성이었다. 요동반도로부터 평양성으로 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 들 중 하나다.

중국 당국은 합당한 문헌적, 고고학적 근거 없이 만리장성을 이 곳까지 연장해 놓았다. 박작성 정상으로 이어지는 성벽은 명나라 때의 장성으로 지난 2000년 무렵 보수했다. 이 성벽은 고구려 성벽을 파괴하며 축조된 성벽이다. 호산장성 역시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하고 있기에 불과 100여 앞에서 북한군 초소와 북한군을 마주 볼 수 있었다.

호산장성 인근 접경지역(사진 위쪽 중앙 연두색 건물이 북한군 초소).
호산장성 인근 접경지역(사진 위쪽 중앙 연두색 건물이 북한군 초소).

이어 시찰단은 압록강 단교로 이동을 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인데 한국전쟁 당시 중국군의 한국전쟁 투입을 막기 위한 미군의 폭격기 공습으로 다리가 끊겼다.

중국 당국이 이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한 채 관광상품으로 개발한 곳이다. 시찰단은 이 곳에서도 다리가 끊긴 반대편인 북한 쪽에도 이런 역사의 현장이 있을 텐데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를 하면 그 관광수입이 모두 북한 게 될 것이라는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압록강 유람선 선착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압록강 다리의 끊어진 모습.
압록강 다리의 끊어진 모습.

압록강 선착장에 도착해 유람선에 올랐다. 수풍댐을 보기 위해 왕복 2시간 배를 타는 일정이다. 배에 몸을 실은 시찰단 일행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사불란하게 구명조끼를 입었다. 꽤 더운 날씨라 구명조끼를 착용하자 더 더웠다. 시찰단이 모두 구명조끼를 입자 현지 가이드는 다소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뭘 이 정도 유람선을 타면서 구명조끼를 입고 호들갑을 떠느냐?”고 핀잔을 줬다. 시찰단 일행은 말은 안 했지만 “이 사람, 안 겪어봐서 잘 모르네”라는 반응이었다.

그렇다. 우리에겐 세월호 참사라는 씻을 수 없는 아픈, 동물적·사회적 체험이 있다. 또 얼마 전 부다페스트 다뉴브강 유람선 침몰 사고도 경험했다.

선착장을 떠난 유람선은 수풍댐을 향해 운항을 시작했고 강 왼쪽은 중국, 오른쪽은 북한 땅이다. 바로 눈앞에서 북한군 초소와 군인, 강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물고기를 잡는 어부 등을 볼 수 있었다.

시찰단은 북한 사람들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를 외쳐대기 시작했고 북한 사람들도 손을 흔들며 화답해줬다.

현지 가이드 설명이 “북한 사람들도 우리 일행이 남한 사람들인 걸 알고 있다. 수풍댐 코스는 거의 남한 사람들만 방문하는 여정이기에 저들도 우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주는 것”이란다.

유람선이 30여분쯤 운항을 했을까 싶을 때 목전에서 진풍경이 연출됐다. 염소를 키우는 북한 주민이 경사도가 꽤 심한 풀밭에 염소들을 풀어놨는데 염소 두 마리가 5분이 넘게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한 마리가 앞다리를 들어 껑충 뛰어올랐다가 내려오며 뿔로 상대를 공격하면 공격을 받은 상대 염소 역시 뿔로 상대를 공격하는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시야에서 염소들이 사라질 때까지 격렬한 싸움은 지속되고 있었다.

북한쪽 강변에서 본 특이점 중 하나는 아직도 당까(들 것, 환자나 물건을 실어 나르는 기구의 하나)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한에서는 안 쓰기 시작한 지 꽤 오래된 물건이다. 무너진 축대 보수작업을 하는 지 무거운 돌을 당까로 계속 실어 나르고 있었다.

유람선이 운항을 시작한 지 얼추 1시간쯤 지나 수풍댐 앞에 이르렀다. 그 웅장함을 말로 형언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찰단 중 한 명은 북한 주민들을 보고 “안녕하세요?”를 하도 외쳐대다 보니 목이 다 쉬어 있었다.

웅장한 수풍댐.
웅장한 수풍댐.

수풍댐을 본 뒤 뱃머리가 선착장으로 머리를 돌려 내려오는 길에 보트를 타고 배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북한군 병사들을 마주 할 수 있었다. 시찰단은 “안녕하세요?”를 연호했고 북한 병사들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줬다.

유람선에서 내린 시찰단은 대련으로의 이동을 위해 차에 올랐다. 대략 4시간 정도의 여정이다. 이젠 차를 타는 게 지겨울 정도가 됐다. 대련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9시(현지 시간)쯤. 늦은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보트를 타고 배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북한군 병사들.
보트를 타고 배 위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북한군 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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