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평화문화연구소 중국시찰단 동행 취재기[4-끝]
김포평화문화연구소 중국시찰단 동행 취재기[4-끝]
  • 조충민 기자
  • 승인 2019.08.01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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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차(7월2일)-대련 여순감옥
안중근 의사, 신채호·이회영 선생 등 순국한 곳
안 의사 1910년 3월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조마리아 여사,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에 가슴 먹먹
친일청산 또 하나의 과제…조선족 한국 국적 취득인 듯
여순감옥 내 안중근 의사 기념관.
여순감옥 내 안중근 의사 기념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 의사와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선생 등 수많은 독립지사들이 순국한 여순감옥을 찾았다.

안중근 의사는 지난 1909년 10월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 그는 현장에서 사살됐고 안 의사도 현장에서 체포됐다. 안 의사의 “나는 의병의 참모중장으로 의거 국제 공법에 따라 처리해 달라”는 뜻과 상관 없이 일제는 1910년 2월14일 사형을 선고했고 같은 해 3월26일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 곳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어머니 전상서와 사형 집행 전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가 게시돼 있었다. 이전에 몇 번을 읽었던 글들이었지만 안중근 의사가 순직한 현장에서 다시 읽으니 느낌이 남달랐다.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 글 중에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딴 맘 먹지 말고 죽으라”는 대목에선 갑자기 울컥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듯 했다.

아들에게 차마 못할 말을 적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맘이 어땠을까? 말로 형언할 수는 없는 처절한 심경이었을 것이다.

여순감옥 내부.
여순감옥 내부.

주은래 중국 전 수상이 지난 1963년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항일투쟁의 시작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에서부터다”라고 인정하며 안중근 의사에 대해 친필 추모시를 썼다고 한다. 주은래 전 수상이 쓴 유일무이한 추모시다.

당초 일정대로라면 관동법원으로 이동을 했어야 하지만 귀국 시간이 촉박해 아쉬운 발길을 대련공항 쪽으로 돌려야만 했다. 공항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오후 2시30분 대련발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대련공항 근처로 이동을 시작하며 현지 가이드가 차량 안에서 4박5일 간 일정을 포함, 대한민국에 대한 나름의 소회를 밝혔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중국 조선족들의 대한민국 취업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어준 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항상 아쉬운 점은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 아직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미국 동포가 쉽게 한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데 반해 조선족의 국적 취득은 아직 쉽지가 않다”고 안타까운 듯 말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위해, 또는 최소한 일제 치하에서 살기가 싫어 조국을 어쩔 수 없이 떠나야만 했던 중국 조선족들. 해방 뒤 반민특위 실패로 이루지 못한 친일청산이 아직 우리의 과제로 남아 있듯이 조선족들의 국적 취득 문제 역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숙제가 아닐까 싶다.

여순감옥 수감자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도.
여순감옥 수감자들이 강제노역을 하고 있는 모습을 재현한 모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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